부탁을 거절 못 해서 늘 자기 일이 밀린다는 분이 있었어요. 착하다는 말을 듣지만 정작 본인은 지쳐 있었죠. 저는 그 지침이 착함 자체 때문인지, 다른 데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착하게 사는데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 이건 생각보다 깊은 질문을 품고 있더군요. 내 착함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질문이요.
한 철학자가 도덕을 둘로 나눠 봤어요. 하나는 넘치는 힘에서 남에게 베푸는 착함이고, 다른 하나는 부딪치기 두려워 맞춰주는 착함이라고요. 겉모습은 같아 보여도 뿌리가 완전히 다른 거죠.
앞의 것은 내가 선택한 미덕이라 베풀고도 개운합니다. 뒤의 것은 거절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 하고 나면 억울함이 남더군요. 착하게 살았는데 손해 본 느낌이 든다면, 그 착함이 힘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건 아닌지 볼 필요가 있어요.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는 자는,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이 말이 아팠어요. 다 받아주는 게 착함이 아니라, 사실은 미움받는 게 두려운 마음일 때가 있다는 거죠. 그러면 아무리 베풀어도 채워지지 않고, 상대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더군요.
거절을 못 하는 밑바닥에는 대개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죠. 그런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하면, 정작 나 자신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더군요. 다 맞춰주다 보면 내 몫이 계속 밀리니까요. 누군가는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가 진짜 아끼는 사람에게 쓸 힘이 남습니다.
저는 착함을 버리라고는 못 해요. 다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의 착함과, 거절 못 하는 사람의 착함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니라고 말할 힘이 있을 때, 예스도 비로소 내 선택이 되니까요.
착하게 사는데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면, 착함을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에요. 다만 그 착함이 두려움에서 나온다면, 먼저 아니라고 말하는 법부터 익히는 게 순서죠. 남에게 맞추는 자리에서, 내가 베풀 것을 내가 정하는 자리로 옮겨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