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자리에 앉으시는 분이 있어요. 사람이 적은 날에도 굳이 남들과 두 자리 이상 떨어져 앉으시죠. 어느 날 그러시더군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오히려 혼자인 게 더 또렷해진다고요.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느낌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 틈에서 더 세게 옵니다.
우리가 쉽게 이해받는 부분은 대개 남들과 겹치는 부분이에요. 같은 직업, 같은 고민, 같은 취향. 겹치니까 설명이 짧아지고, 짧으니까 통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안 겹치는 부분은 매번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죠. 그리고 사람은 긴 설명을 끝까지 듣기 어려워하더군요. 그러니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건, 나에게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실제로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자주 검증해요. 정말 아무도 모르는지, 아니면 알아줬으면 하는 그 사람이 모르는 건지 말이죠. 대부분은 후자더군요. 특정한 한 사람에게서 못 받은 이해를 세상 전체로 확장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설명을 생각보다 안 합니다.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다가, 안 알아보면 이해받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리죠.
너를 알아볼 눈은 기다려서 오지 않는다. 네가 먼저 너를 말해야 온다.
이 문장을 오래 붙잡았어요. 이해는 우연히 도착하는 선물이 아니라, 설명을 반복한 사람에게 생기는 결과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한 번에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사람에게 한 조각씩만 건네도 몇 년이면 꽤 많은 조각이 건너가더군요.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느껴진다면, 나를 이해할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결론 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한 사람에게 설명 안 해본 한 조각을 건네보세요.
이해받는 자리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더군요. 누구에게 무엇부터 건넬지는, 내가 고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