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 요즘 자주 듣는 얘기가 있어. 이제 뭘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안 본다는 거야.
한 손님은 앞부분은 무조건 넘긴다고 했어. 다른 손님은 싸움 장면만 찾아서 본대. 어떤 애는 아예 남이 정리해준 걸 먼저 보고 나서 본편을 본다고 하더라고.
나는 그게 잘못됐다고 할 생각은 없어. 시간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급할 땐 그래.
며칠 전에 한 손님이 어떤 이야기를 다 읽었다고 하길래 물어봤어. 누가 죽었냐고 하니까 술술 말해. 인물 이름도 정확하고, 순서도 맞아.
그래서 이어서 물었지. 왜 죽였냐고.
그 손님이 한참 말이 없더라고. 그러다 그러대. 그건 잘 모르겠다고.
나는 그날 이걸 알았어. 건너뛰며 읽으면 사건은 남는데 이유가 안 남아.
생각해보면 당연해. 사건은 짧게 쓰여 있고 이유는 길게 깔려 있거든. 누가 죽는 건 한 줄이지만, 그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앞의 스무 편에 흩어져 있어.
그래서 건너뛰면 뼈대만 남아. 뼈대는 다 비슷해. 누가 배신하고 누가 죽고 누가 이겨. 그러니까 다 읽었는데 다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야.
이게 무협에서 유난히 크게 걸려. 이 장르는 관계로 굴러가는 이야기라서 그래.
같은 칼질이라도 사형이 사제를 베는 거랑 남이 남을 베는 게 완전히 다르잖아. 그 차이는 싸움 장면에 안 적혀 있어. 앞에서 둘이 밥 먹던 장면에 적혀 있지.
그러니까 무협에서 재미없는 부분을 다 건너뛰면, 정작 재밌는 부분이 왜 재밌는지가 같이 사라져. 남는 건 화려한 초식 이름뿐이야.
다 읽으라는 소리는 아니야. 나도 다 안 읽어. 대신 넘길 데를 정해뒀어.
밋밋해 보이는 장면이 제일 비싼 장면일 때가 많아. 화려한 장면은 사실 그 밋밋한 장면들의 이자야.
그 손님이 며칠 뒤에 다시 와서 그러더라. 앞부분을 다시 읽었더니 마지막 장면에서 화가 났다고.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 말이 제일 좋았어. 화가 났다는 건 제대로 읽었다는 뜻이거든.
지금 읽는 게 자꾸 건너뛰게 되면 말해줘. 건너뛸 데가 없는 쪽으로 하나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