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서가에서 책을 뽑았다가 목차만 보고 도로 꽂으시는 손님을 자주 봅니다. 손이 망설이는 게 보이더군요. 한 분은 그러셨어요. 이게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 물음을 오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설명이 안 되는 상태에 자주 놓이죠. 억울한데 왜 억울한지 모르겠고, 잘 지내는데 왜 허전한지 모르겠는 상태 말이에요. 이때 대부분은 그냥 넘어갑니다. 이름이 없으면 다룰 수가 없으니까요.
철학이 하는 일은 그 상태에 이름과 구분을 붙여주는 겁니다. 자유와 방임이 어떻게 다른지, 후회와 반성이 어디서 갈리는지 배우고 나면 같은 하루가 다르게 보이더군요. 이름이 생기면 그때부터 손에 잡히거든요.
저는 철학의 값이 결정 앞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어느 쪽을 골라도 손해가 있는 자리, 남들 말이 다 일리가 있어 보이는 자리에서 사람은 기준이 필요하죠.
그 기준을 그때그때 즉흥으로 만들면 매번 흔들립니다. 미리 읽어둔 사람은 이미 정리된 틀을 꺼내 쓰더군요. 답을 아는 게 아니라 헤매는 시간이 짧아지는 겁니다.
생각의 도구를 갖지 못한 자는, 남이 만든 결론을 살게 된다.
철학책이 안 읽히는 이유는 대개 개념 정의부터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대로 권해요. 지금 내가 막힌 문제부터 잡고, 그 문제를 다룬 짧은 글만 찾아 읽는 겁니다.
체계는 나중에 붙습니다. 필요해서 읽은 개념은 안 잊히더군요.
철학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인가 싶다면, 유명한 책을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말이 막히는 상황 하나를 정하고, 그 상황에 이름을 붙여줄 글부터 찾아보세요.
쓸모는 책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문제를 가지고 갈 때 생기더군요. 그 문제를 고르는 건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