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무 말 없이 계단으로 다시 올라가던 이웃을 본 적이 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 뒷모습이 화를 어디에 둘지 몰라 하는 사람의 모습이더라고요.
화를 낸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가 많죠. 관계가 상하거나 일이 커지거나요. 그래서 우리는 대개 삼켜요. 삼키는 게 어른스러운 일이라고 배우기도 했고요.
그런데 삼킨 화는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어디 가지 않고 몸 어딘가에 앉아 있다가, 상관없는 자리에서 엉뚱하게 나오는걸요.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으로 나오는 게 제일 흔하겠지요.
같은 삼킴처럼 보여도 결이 달라요. 넘기는 건 내가 이건 안 다루기로 정한 거고, 참는 건 다루고 싶은데 못 다룬 거죠. 앞의 것은 남지 않는데 뒤의 것은 남더라고요.
화를 억누르는 사람은 그 화를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이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어요. 실제로 참은 화는 자주 자책으로 모양을 바꾸거든요. 왜 그때 말 못 했지, 왜 그렇게 만만해 보이지 하면서요. 화가 밖으로 못 나가면 안으로 향하는 셈인걸요.
모든 화를 그 자리에서 낼 수는 없어요. 그건 현실이에요. 다만 낼 수 없다고 없던 일로 치지는 않았으면 해요.
저는 안 내기로 한 날에는 대신 이름을 붙여둬요. 오늘 그 말이 무례해서 화가 났다, 정도로요. 이름을 붙여두면 그 화가 밤에 다른 모양으로 돌아오는 일이 줄더라고요.
화를 못 낸 자신을 못났다고 여기지 않으셨으면 해요. 낼 수 있는 자리와 없는 자리는 대개 상대가 정하지 내가 정하지 않거든요. 그건 성격의 문제가 아닌걸요.
오늘 삼킨 게 있다면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화가 났다고 말해주세요. 아무한테도 못 한 말을 한 사람에게라도 하고 나면, 그 화가 조금은 앉을 자리를 찾더라고요. 그런 밤을 저도 여러 번 보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