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음이 좋지 않으시다면, 무엇 때문인지 말할 수 있으십니까.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두려움입니다. 말할 수 없다면 그건 불안입니다.
같은 말처럼 쓰시지만 다릅니다. 그리고 이 구분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꿉니다.
두려움은 대상이 있습니다. 내일 발표가 두렵다, 그 사람의 반응이 두렵다, 결과가 두렵다. 무엇이 무서운지 가리킬 수 있습니다.
불안은 대상이 없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 가슴이 눌립니다. 이유를 찾으려 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겁니다. 대상이 없는 감정은 크기를 잴 수가 없죠.
내일 발표가 두렵다면 그 두려움은 발표가 끝나면 사라집니다. 크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는 불안은 끝이 없습니다. 잴 수 없으니까 무한대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감정에 이름 붙이는 걸 별것 아니라고 여기시는데, 저는 반대로 봅니다.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작아집니다.
이름이 붙는다는 건 경계가 생긴다는 뜻이니까요. 여기까지가 그것이고 여기부터는 아니라는 선이 생깁니다. 선이 생기면 크기가 보이고, 크기가 보이면 그건 더 이상 나를 통째로 삼키지 못합니다.
이건 제 확신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그것뿐이기도 하고요.
방법이라고 하기엔 단순합니다. 후보를 적어보시면 됩니다.
지금 마음이 불편한 이유로 짐작 가는 것을 세 개만 적습니다.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틀려도 됩니다. 중요한 건 대상이 없던 감정에 억지로라도 대상을 붙여보는 것입니다.
세 개 중 하나가 "아 이거였구나" 하면 그 순간 불안이 두려움으로 바뀝니다. 두려움은 다룰 수 있습니다. 크기가 있으니까요.
셋 다 아니어도 소득이 있습니다. 아닌 것 세 개를 지웠으니 범위가 좁아진 겁니다.
"불안한 게 잘못된 건가요"라고 물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아닙니다. 불안은 고장이 아닙니다. 앞을 내다보려는 능력의 부작용에 가깝습니다. 다가올 일을 미리 그려볼 수 있는 사람만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불안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없애자는 이야기를 저는 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붙이자는 이야기만 합니다.
다만 분명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까지만 합니다. 그 이상은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마음이 눌리셨다면 하나만 해보시죠. 그게 두려움인지 불안인지부터.
대상을 못 찾으시겠으면 말씀해주세요. 같이 후보를 세워봅시다. 셋 중에 하나는 걸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