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에 마음이 무겁다면 그때 내게 선택지가 있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있었으면 후회이고 없었으면 아쉬움입니다. 선택지가 없던 일을 후회로 부르면 갚을 수 없는 빚이 됩니다.
뉴스가 거의 모든 일을 충격이라고 부릅니다. 충격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고 당혹은 대처를 벗어난 것입니다. 감정 어휘가 닳으면 내 마음을 부를 말도 같이 닳습니다.
둘 다 더 안 붙잡는다는 점에서 겉모습이 같습니다. 갈리는 자리는 다시 기회가 왔을 때의 답입니다. 붙잡으면 체념이었고 같은 선택을 하면 수용이었습니다.
뉴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말입니다. 유감은 내 기분을 알리는 말이고 사과는 내가 한 일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주어가 무엇이냐로 갈리고, 그 차이가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옵니다.
라디오에서 위로와 격려를 한 묶음으로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위로는 지금 자리에 같이 있어주는 말이고 격려는 앞으로 나가라는 말입니다. 필요한 쪽이 아니면 둘 다 상처가 됩니다.
큰 일이 끝난 뒤에 오는 두 감정입니다. 피하고 싶던 게 끝나면 안도이고 나를 세워두던 게 끝나면 허탈입니다. 끝난 다음 날이 이상하다면 이름이 섞여 있는 겁니다.
인터뷰에서 불편했다는 말이 만능어처럼 쓰입니다. 불편함은 내 자리가 좁아진 것이고 불쾌함은 무언가가 나를 향해 온 것입니다. 불쾌한 것을 불편하다고 부르면 말할 자격이 사라집니다.
같은 도움을 받고도 어떤 사람은 미안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고맙다고 합니다. 상대가 손해를 봤으면 미안함이고 나에게 준 것이면 고마움입니다. 이 한 단어가 관계의 장부를 바꿉니다.
둘 다 앞이 안 나간다는 느낌이지만 막막함은 갈 곳을 모르는 것이고 답답함은 갈 곳은 아는데 안 움직이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정보냐 통로냐로 갈립니다.
겉으로 하는 행동은 똑같습니다. 배려는 상대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고 눈치는 나를 지키려 살피는 것입니다. 상대가 몰라도 하겠느냐는 질문 하나로 갈립니다.
뉴스는 거의 모든 대립을 논란이라고 부릅니다. 논란은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갈등은 당사자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이름이 틀리면 해결할 사람이 사라집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는 건 둘이 똑같습니다. 갈리는 자리는 몸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 결과를 원하면 설렘이고 피하고 싶으면 긴장입니다.
마음이 급한 건 같지만 초조함은 내 손 밖의 결과를 기다릴 때, 조급함은 내 손 안의 일이 안 나갈 때 생깁니다. 어느 쪽인지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반대가 됩니다.
질투와 부러움은 다른 감정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가 다릅니다. 구분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갈립니다.
미안한데 사과를 못 하고 있다면 이름이 틀렸을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내가 한 일을 향하고 수치심은 나라는 사람을 향합니다. 향하는 곳이 다르면 할 일도 달라집니다.
혼자 있는 상태는 같은데 이름이 둘입니다. 고독은 내가 고른 혼자이고 외로움은 고르지 않았는데 온 혼자입니다. 이 구분 하나로 저녁에 할 일이 정해집니다.
둘 다 상대 때문에 생기지만 서운함은 내 기대가 어긋난 것이고 억울함은 사실이 틀리게 알려진 것입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말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가 정해집니다.
같은 말처럼 쓰지만 다릅니다. 무엇이 무서운지 말할 수 있으면 두려움, 없으면 불안입니다. 이 구분 하나가 왜 크기를 바꾸는지 정리합니다.
뉴스를 보며 소리치는 사람을 옆에서 보다 정리했습니다. 분노는 넘어진 선이 있고 짜증은 방해가 있습니다. 둘을 갈라야 화를 낸 다음에 남는 것이 달라집니다.
게으름은 하기 싫은 것이고 무기력은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것입니다. 정반대인데 같은 말로 취급받으니까요.
자꾸 떠오른다고 다 그리움은 아닙니다. 그리움은 끝난 것을 향하고 미련은 아직 안 끝났다고 보는 마음입니다. 어느 쪽인지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반대가 됩니다.
둘 다 텅 빈 느낌이지만 지루함은 채우면 사라지고 공허함은 채워도 남습니다. 이 한 가지 기준으로 나누면 오늘 저녁에 무엇을 해야 할지가 갈립니다.
사전은 거의 같이 쓰지만 쓰이는 자리를 보면 갈립니다. 염려는 대상을 향하고 할 일이 붙지만 걱정은 나에게로 돌아와 반복됩니다. 이웃의 며칠을 옆에서 보고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