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에 뉴스를 틀어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단어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같은 채널에서 충격이라는 말이 다섯 번 나왔습니다.
다섯 건이 다 충격일 리는 없습니다. 그중 몇은 그냥 예상보다 조금 이른 일이었고, 몇은 이미 여러 번 나왔던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뒤 카페에서 옆자리 손님이 일행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요새는 뭐만 하면 충격이래." 그 손님이 짚은 게 정확히 제가 세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방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말씀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쪽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단어 쪽입니다.
단어는 세게 쓸수록 약해집니다. 충격이 다섯 번 나오면 여섯 번째 충격은 아무 무게가 없습니다. 그러면 진짜로 예상이 무너진 일이 왔을 때 그걸 부를 말이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이게 뉴스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화면에서 닳은 단어를 우리도 씁니다. 자기 마음을 부를 때도 같은 단어를 꺼내 쓰지요. 부를 말이 닳으면 마음의 크기도 못 재게 됩니다.
충격은 예상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럴 리 없다고 여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순간적이고, 대개 짧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머리가 늦게 따라옵니다.
당혹은 대처가 무너진 것입니다. 일어난 건 알겠는데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순간적이지 않고, 길게 갑니다. 머리는 돌아가는데 손이 안 움직입니다.
그러니 둘은 세기의 차이가 아닙니다. 예상이 무너졌느냐 대처가 무너졌느냐, 자리가 다릅니다.
그 일을 두고 지금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둘 다 나오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럴 때는 순서를 보시면 됩니다. 처음 몇 분이 충격이고 그 뒤에 남아 있는 게 당혹입니다. 저녁까지 남아 있는 쪽은 대개 뒤쪽이겠지요.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잦아듭니다. 예상은 며칠이면 새로 짜이니까요. 그래서 충격에는 별다른 조치가 필요 없습니다.
당혹은 안 잦아듭니다. 대처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그대로 남습니다. 그런데 이걸 충격이라고 부르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로 넘기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안 괜찮은데 말입니다.
당혹 쪽이면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닙니다. 다음 한 칸을 정하는 것입니다. 전체 계획이 아니라 딱 한 칸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볼지, 무엇부터 확인할지. 한 칸이 정해지면 당혹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대처가 무너져서 생긴 감정이니 대처가 하나만 서도 달라지는 겁니다.
이건 제 부탁에 가깝습니다. 충격이라는 말을 아껴 두십시오. 정말로 예상이 무너진 일에만 쓰시면, 그 말이 필요한 날 그 말이 남아 있습니다.
감정 어휘는 재고가 있는 물건과 같습니다. 함부로 쓰면 정작 필요할 때 자기 마음을 부를 말이 없어집니다. 부를 말이 없으면 크기를 못 재고, 크기를 못 재면 무한대처럼 느껴지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마음이 흔들린 일이 있으셨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무너진 게 예상이었는지 대처였는지.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