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받는 삼십 분 동안 미안하다는 말을 열 번 하고, 고맙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예의를 차린 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저는 다르게 봤습니다. 그건 예의가 아니라 장부입니다. 그리고 그 장부에는 받은 것이 하나도 안 적히고 빚만 열 줄이 적혔습니다.
미안함은 상대가 손해를 봤을 때 쓰는 말입니다. 나 때문에 상대에게서 무언가가 빠져나갔습니다. 방향은 마이너스이고, 기록은 빚으로 남습니다.
고마움은 상대가 나에게 주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상대가 자기 것을 나에게 얹어주었습니다. 방향은 플러스이고, 기록은 받은 것으로 남습니다.
같은 도움 하나에 두 면이 다 있는 건 사실입니다. 상대는 시간을 썼고, 나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을 말로 꺼내느냐에 따라 남는 기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빚으로만 적으면 두 가지가 따라옵니다.
첫째, 내가 계속 마이너스입니다. 만날 때마다 빚이 늘어나니 어느 순간부터 연락하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둘째, 상대가 준 것이 사라집니다. 상대는 자기가 무언가를 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자꾸 손해 본 사람으로 처리되는 겁니다. 도와주고 나서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았던 경험, 상대 쪽에서는 이게 이유일 때가 많지요.
간단합니다. 그 일로 상대에게서 실제로 빠져나간 것이 있습니까?
둘 다 있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때는 순서를 정하시면 됩니다. 고마움을 먼저 말하고 미안함을 뒤에 붙입니다. 순서만 바꿔도 남는 기록이 달라지겠지요.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게 성격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성격이라고 안 봅니다. 미안함은 상대의 판단을 안 기다려도 되는 말이기 때문에 쓰기가 더 쉽습니다. 먼저 낮추면 거절당할 일이 없으니까요.
고마움은 반대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줄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말이고, 동시에 나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말입니다. 이게 더 어렵습니다. 열 번과 한 번의 차이는 대개 여기서 나옵니다.
할 일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다음에 한 번만 순서를 바꿔보시면 됩니다. 미안하다는 말이 올라올 때 고맙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것. 한 번이면 차이가 보입니다.
말이 바뀌면 기록이 바뀌고, 기록이 바뀌면 그 관계에서 내 자리가 바뀝니다. 빚진 사람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도움을 받으셨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먼저 나온 말이 미안함이었는지 고마움이었는지.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