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안에 삼 년째 있는 고장 난 손목시계가 있어요. 고칠 생각도 없고 찰 일도 없는데 버려지지가 않더라고요. 그 옆에는 무슨 날인지도 기억 안 나는 영수증 한 장이 같이 있고요.
물건 자체는 대개 값이 크지 않죠. 어려운 건 그걸 버리는 순간 그때의 시간도 같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서겠지요. 손에 남은 게 그것뿐인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잘 안 쓰는 걸 알면서도 서랍 한 칸을 계속 내주는걸요. 자리를 내주는 게 아니라 시간을 붙잡아두는 셈이더라고요.
버리려다 멈추게 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말이요. 그 언젠가는 대개 오지 않는데도 이 말은 힘이 세더라고요.
인간은 잃는 고통을 얻는 기쁨보다 훨씬 크게 느낀다.
이 말이 설명이 되네요. 안 쓰는 물건을 두는 건 이득 때문이 아니라, 없어졌을 때의 허전함을 피하려는 마음이겠지요. 그러니 게을러서 못 버리는 게 아닌걸요.
한 번에 다 비우겠다고 마음먹으면 대개 하루도 못 가요. 비우는 일에도 마음의 품이 드는데, 그 품을 한꺼번에 쓰려니 지치는 거겠지요.
저는 요즘 상자 하나만 정해두고 거기까지만 봐요. 오늘은 이 상자만, 하는 식으로요. 그러면 버리는 일이 결심이 아니라 그냥 하는 일이 되더라고요.
전부 버릴 필요는 없어요. 이건 남기기로 정한 물건, 하고 이름을 붙여두면 그것도 정리더라고요. 정하지 않은 채로 쌓여 있는 게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지, 물건 수가 무겁게 하는 건 아닌걸요.
저는 그 시계를 아직 못 버렸어요. 대신 서랍 안쪽으로 옮겨두고 남기기로 정했네요. 못 버리는 자신을 나무라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서랍이 조금 가벼워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