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연락처를 내리다가 이름 하나에서 손가락이 멈췄대요. 마지막 대화가 언제였는지 보니 한참 전이더랍니다. 싸운 적도 없고 서운한 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됐다고요.
이런 사이가 제일 설명하기 어렵더라고요.
다툰 사이는 오히려 정리가 돼요. 이유가 있으니 마음을 어디에 둘지 정할 수 있죠. 그런데 아무 일 없이 멀어진 사이는 놓을 자리도 붙잡을 자리도 없더군요.
그래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내가 뭘 잘못했나, 그때 그 말이 서운했나 하고요. 대개는 그런 게 아닌데도요.
사람 사이가 유지되려면 같은 공간이나 같은 시간표가 있어야 하더군요. 학교나 회사나 동네 같은 것들이요. 그게 사라지면 마음이 식지 않아도 만날 이유가 없어져요.
우리는 대개 서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있는 자리 때문에 만난다.
좀 서늘한 말이지만 저는 이게 위로가 됐어요. 멀어진 게 애정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이니까요. 자리가 달라졌을 뿐인걸요.
모든 사이를 이어붙이려 하면 마음이 남아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정리해버리자고 마음먹으면 그것도 잘 안 되죠. 사람은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으니까요.
저는 요즘 중간에 두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연락하지 않아도 잘 지내길 바라는 자리에요. 안부를 묻지 않는다고 마음이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
이상하게도 몇 년 뒤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이어지는 사이가 있어요. 자리가 다시 겹치면 그렇게 되더군요. 그러니 지금 멀어진 게 끝이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오늘 그 이름이 자꾸 걸리신다면, 억지로 결론 내지 않으셔도 돼요. 바꿀 수 없는 걸 미워하기를 멈추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더라고요. 그 이름을 미워하지 않은 채로 두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이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