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두 시간을 내리 들어주고 나서, 자기 얘기는 한마디도 못 꺼낸 채로 일어섰어요. 계산까지 자기가 하더군요. 돌아가는 길에 왜 이렇게 피곤하지, 하고 혼잣말을 하던 게 기억나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듣는 동안 우리는 계속 일해요. 표정을 맞추고, 다음 말을 고르고,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 자리를 살피죠. 그게 두 시간이면 두 시간 내내 이어지는걸요.
그러니 몸은 앉아 있었는데 마음이 지치는 게 당연한걸요. 잘 들어준 날일수록 더 그렇더라고요.
이상하게도 얘기는 잘 들어주는 사람 쪽으로 몰리더라고요. 편하니까요. 그런데 그 편함은 한쪽으로만 흐르는 편함이에요. 듣는 사람은 자기 차례를 잘 못 챙기고요.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볼 때에만 잠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이 말이 맞네요. 남 얘기를 듣는 동안엔 내 무거운 것들이 잠깐 뒤로 물러나거든요. 그래서 듣는 일이 도피가 되기도 하는걸요. 편해서 계속 듣다가, 어느 날 몰아서 지치는 거죠.
오늘은 좀 힘들다고 말하면 매정한 것 같아서 못 하죠. 그런데 계속 받아주다 보면 마음에 원망이 조금씩 앉더라고요. 그 원망이 미안해서 또 참고요.
저는 요즘 다 듣지 못하는 날엔 다음에 길게 듣겠다고 말해요. 거절이 아니라 시간을 옮기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하고 나면 다음에 들을 힘이 남더라고요.
들어주는 사람은 대개 자기가 듣는 쪽이라는 걸 당연하게 여겨요. 그래서 힘들 때 어디에 말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말하는 연습이 안 되어 있는 셈이에요.
오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받아주고 지치셨다면, 그 지침을 이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으면 해요. 잘 들어준 값으로 온 피로인걸요. 그런 사람에게도 앉아서 말할 자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네요.